숲자락 설계도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권유했음에도 식물탐사팀에서 굳이 테스트 설계를 했다. 식물탐사팀의 활약에 관해서는 지난 포스트에서 간단히 소개했었다.

독일의 리하르트 한젠 교수가 개발한 서식처 유형 배식기법을 적용해 본 것이다.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나라도 그랬을 테니까.

그 테스트 설계도가 환경과조경 12월 호에 실렸다. 배식 순서를 보면,

우선 목본식물을 배치하여 숲자락 중 숲과 유사한 환경을 만들었다. 서어나무, 단풍나무, 박쥐나무와 관목 새비나무도 끼어들었다. 박쥐나무와 새비나무는 흔히 볼 수 있는 나무가 아닌데 설계를 맡았던 수목원전문가 김장훈 정원사와 조경스튜디어 천변만화의 이양희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개성적인 잎과 꽃, 열매가 아름다운 자생 반음지 목본 식물”로서 정원용 식물로 높은 잠재력을 보이는 식물이라고 한다. 숙근초 뿐 아니라 목본까지 새롭게 발굴한 것은 훈장감이 아닐까 싶다. 물론 앞으로 박쥐나무와 새비나무가 어떻게 자라줄 지 두고 볼 일이다.

김장훈 정원사와 이양희 대표는 매우 차분하게 다음 단계로 넘어가,

숙근초 중에서 리드종을 선정하여 배치하고, 리드 종을 받쳐줄 동반종을 선정, 작은 군락을 만들어 리드종 주변을 맴돌게 했으며 너무 뛰어나거나 세력이 커서 특별출연 밖에는 할 수 없는 숙근초를 계절별로 선정항 배치했다. 그 다음 바닥을 피복해 줄 작고 사회성이 뛰어난 숙근초를 선정하여 빈 곳을 가득 채운 뒤, 봄에 피는 식물들, 마치 구근과 같은 효과를 내는 식물들을 엄선하여 흩뿌리듯 배치했다.

숲자락 설계의 여섯 단계

그래픽: 이양희

최종도면과 적용식물목록

목본식물 4종, 숙근초 25종을 배치했다. 4m x 8m의 작은 공간을 채우고 철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이기에 충분해 보인다.

이양희 대표의 뛰어난 그래픽이 돋보인다. 자연형 정원이라면서 왜 사각형인가 묻는 이가 있다면 그는 숙근초의 힘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사각형의 틀은 일단 배식기법을 적용해 보기 편의상 도입한 것이며 숙근초의 자연스러운 형상과 잎, 번식하여 번지는 행태에 따라 곧 무색해 질 것이다.

어딘가 작은 실험면적을 확보하여 이대로 심어본다면, 정작 연구는 그 다음부터 시작된다. 지속적으로 관찰해야 하는데 이때 관건이 되는 것은 개체가 어떻게 잘 자라는가 보다는,

  • 얼마나 서로 잘 어울리는 가(외형적 조화감. 전체적 형상과 미학)
  • 이들이 마치 자연에서와 같이 공동체를 형성해 가면서 오래도록 잘 살아갈 것인가(내면의 시스템, 생태)
  • 얼만큼 관리하고 조절해 주어야 하는가.

관리에 특별히 신경을 쓰는 이유는 서식처 유형의 최종 목표가 저관리 내지는 무관리이기 때문이다.

자연에서는 식물들이 군락을 이루고 사람의 간섭없이 잘 살아가지만 정원이라는 인위적인 환경에서는 “무관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식물이 제대로 선정되어 서로 밀쳐내지 않고 사이좋게 살아가는 경우 “저관리”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것에는 틀림이 없다.

예를 들어 공원에 어떻게 이렇게 복잡한 패턴으로 식재하겠는가라는 의문이 들 수 있는데 서식처 유형의 의의는 개체 하나하나를 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식물공동체의 시스템과 하모니를 추구하는하는 것이므로 그중 한 종이 도태된다고 해서 크게 우려할 일은 아니다. (고 정 희)

그래픽: 이양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