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직원들이 지겨웠을 것이다. 민은 설계사무실 윗집에서 살았다. 아흔이 되어 더 이상 설계하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직원 Anet Scholma에게 소장직을 물려주었다. 그리고도 매일 오후에 들여다 보았다고 한다. “지금 뭐하니? 설명해 봐“. 설명을 듣고나서 한숨을 쉬며 독주 두 잔을 마시고 퇴근했다고 한다. 매일 시계처럼, 오후 다섯 시에.
아 저 노인네 언제 돌아가시나? 그런 생각 했을 것 같다. 그것이 1990년대 초. Anet Scholma는 이제 중견이 되어 오늘도 “민 로이스 조경설계사무실“을 이끌어 가고 있다.
1999년 1월 민 로이스는 아쉬움을 남긴 채 눈을 감았다. “난 아직도 할 일이 많은데 이렇게 끝나다니 슬프다.”라는 말을 남기고. 그때 직원들은 실험정원 설립 75주년 기념 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던 때였다. 민이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에 그럼 행사 취소해? 이런 것이 아니라 “아냐 그럴 수록 해야지” 그러면서 Anet Scholma는 실험정원에 새 정원 두 개를 설계해서 넣었다. 민의 매섭고 비판적인 시선없이 작업할 수 있어서 한편 좋았겠지만 다른 한편 이거 맞게 한 거야? 이러면서 조금 서성였을 것이다.
그때 탄생한 정원 하나는 수벽정원, 다른 하나는 코너정원이다. 둘이 수벽을 사이에 두고 붙어 있다. 오른 쪽이 수벽정원, 왼쪽이 코너정원이다.
수벽정원 혹은 토피어리 정원
꽃피는 숙근초 없이 식물의 형태와 질감으로만 구성된 녹색 정원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핵심은 좁고 긴 연못. 평행으로 화단과 수벽을 세웠는데 화단에는 꽃을 심지 않고 억새를 줄지어 심었다. 줄무늬들이 서로 어떻게 ‘노니는 지’ 보고자 했다. 높은 수벽의 줄, 억새의 풀줄기, 긴 연못과 포장석 사이의 틈새, 그리고 한 그루 세워 둔 단풍나무 의 기둥의 세로줄 문양. 이런 것들을 유심히 바라보라고 권한다.
물가의 물조형물은 조각가 Henk Rusman의 작품. 여기서 물이 흘러내려 연못의 수면에 반원의 파장을 이룬다. 이것이 유일한 동적 요소. 수벽정원은 고요함, 그 자체인 것 같다.
코너정원
뭐 특별한 뜻이 있는 것은 아니다. 좁고 긴 연못 옆의 수벽을 사이에 두고 옆에 붙어 있는 것이 코너정원인데 이 정원을 마무리하는 긴 수벽이 꺾이기 때문에 그리 부른다고 한다. 이로 인해 커다란 정사각형의 공간이 형성되었는데 여기에는 꽃피는 숙근초를 몇 종 심었다. Anet Scholma는 심플한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키작은 가을아스터가 주제를 이룬다. 늦여름까지 녹색의 양탄자를 이루다가 초가을이 되면 양탄자가 연보라 색으로 변한다. 그리고 좀 큰 특별한 숙근초 몇 종을 소그룹으로 반복해서 배치했다. 마지막으로 키 크고 여리여리한 Verbena bonariensis 를 고루 분산배치하여 아스터 양탄자 위에 부유하게 했다. 피트 아우돌프 풍이다. 식재방식에서 ‘탈 민 로이스’ 한 듯 보인다. 이때는 이미 New Perennial Perspectives가 시작된 뒤였고 젊은 Anet Scholma는 새로운 식재개념을 적용해 보고 싶었을 것이다.
바로 그때문에 실험정원이 가지는 의미가 크다. 민 로이스실험정원은 이제 민 로이스의 작품만 보고 배우는 곳이 아니라 세대가 교체하면서 달라져가는 설계양상도 함께 관찰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저는 민로이스의 실험정원이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점에 대해 한편으론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첫번째 생각은 문화재란 자고로 죽은 박제와 같아서 살아움직이는 식물들을 억압하게 될 것이란 생각입니다. 디자인 콘셉트를 박제하기 위해 어쩌면 그 자리에 맞지 않는 식물을 계속 심어야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또 초본류와는 달리 목본류들은 키가 계속 성장하기 때문에 민로이스가 심었을때 고려했던 미기후조건과 시간이 흐른후의 미기후 조건이 분명 달라질거란 생각입니다. 하루종일 해가 들었던 자리가 그늘자리로 바뀔수도 있고, 큰나무가 물을 많이 가져가서 땅이 더 건조해 질 수도 있구요. 물론 전세계적인 기후변화도 있지만요. 두번째는 문화재가 되면 민로이스의 실험정신이 사라질 거란 생각입니다. 후배디자이너들이 민의 실험정신에 따라 새로운 정원을 추가해 나가는 것이 중요한 전달해야될 가치란 생각입니다. 문화재가 되어버리면 이런 실험정원을 새로 만들수 없을테니 민의 실험정신과 철학 또한 전달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올려주신 글들을 읽노라니 수업 후 잊어버렸던 내용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역시 명사의 명강의는 여운이 길지요~
이안숙 샘,
탕정의 다층구조 숲을 기억하고 계시네요. 고맙습니다.
정원문화재에 관한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지금 우정섬 히스정원 등에서 겪고 있는 문제가 바로 그 때문인데.. 한편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정원컨셉이 어느 정도 보존되어 보고 배울 수 있는 점은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정원문화재 규정 등을 만들 때 지금 지적하신 사항들을 고려해서 너무 경직되지 않게 정원의 변화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방향으로 가 준다면 바람직하겠지요. 그런데 포츠담 문화재 관리청 담당자들의 생각은 좀 다른 것 같아요. 여기서도 요즘 토론 대상이 되고 있고요.
민 로이스의 실험정원에 후배들이 계속 정원을 만들어 넣고 있는 점, 저도 참 좋습니다.
어서 코로나가 종식되어 민 로이스 실험정원 가 보셔야 할 텐데요^^
정원공부는 하면 할수록 즐겁습니다. 얼마전 방송에서 삶의 희노애락 중 즐거울 락을 추구하며 살아야 건강하고 행복하다고 하더라구요. 저에겐 정원공부가 즐거울 락입니다. 좀 더 넓게 좀 더 깊이… 식물적용학 수업을 통해 잠들었던 호기심들이 깨어납니다. 코로나가 종식되면 가보고 싶은 곳이 너무나 많습니다. 수업을 들을때마다 더 늘어나지만,,,, 우정섬에서 박사님을 만나뵐 수 있다면 더없는 기쁨이 될거 같아요. 생각만해도 두근두근하네요… *^^*
그러게요. 내일 또 우정섬에 가는데 가서 사진 올릴게요. 락을 추구하며 사는 삶. 좋은 말씀입니다. 따라해 보고 싶네요.
안숙 샘 그 좋은 솜씨로 만든 정원도 꼭 보고 싶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