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와 라흐마니노프

안녕하세요.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의 고정희입니다.

식물적용학 온라인 강좌를 시작하기 전에 강좌의 내용과 프로그램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소개가 좀 길어질 것 같은데 잠시 시간을 내서 끝까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식물적용학이란 용어가 생소하게 들리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을 다르게 표현하는 것뿐입니다. 영어권에서 말하는 플랜팅 디자인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플랜팅디자인이 소프트웨어라면 식물적용학은 하드웨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플랜팅디자인 서적을 보면 좋은 사례가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피카소 화집을 들여다본다고 해서 당장 그처럼 그림을 그릴 수는 없겠죠. 또는 피아노 앞에 처음 앉아 본 사람이 쇼팽이나 라흐마니노프의 악보를 펼쳐놓고 아무리 뚫어지게 들여다본다고 해도 연주는 할 수 없습니다.

식물과 함께 지속가능한 정원만들기, 도시환경 책임지기

식물적용학이란 바로 이렇게 ‘식물과 함께’ 정원을 만들기 위해 또는 도시공간의 생태적 환경을 책임지기 위해 필요한 기초이론과 지식을 전달하는 과목입니다. 식물적용학은 식물학자나 생태학자들이 개발한 것이 아니고 정원디자이너, 조경디자이너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개발하고 발전시켜오다가 학문으로 정립되었습니다.

바른 식물을 바른 장소에 바르게 심는 식재디자인을 하려다 보니 식물지리학, 식물형태학, 식물사회학을 공부하게 되고 이에 기반한 식재디자인의 원칙을 정립하게 된 것입니다. 그외에도 식물의 생리, 식물의 형태, 식물적용에 필요한 새로운 분류법 등 관련이론이 상당히 많습니다. 각각의 이론을 깊이 알 필요는 없지만 기본적인 것을 이해하고 이를 식재디자인에 모두 응용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물론 기초지식이 없어도 뛰어난 감각으로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 정원이 “지속가능”할까요? 한시적으로 반짝하는 효과를 낼 수는 있을지 몰라도 오래도록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기는 어려울 겁니다.

식물적용학을 공부하는 최종 목표는 지속가능한 정원과 도시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또한 시대적 요구에 따라 종다양성에 기여할 수 있는 전략,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전략공간이 탄생할 수 있다면 더욱 좋습니다.

분석대상지 – 포츠담 우정섬

스냅샷이 아닌 영화 한 편

좋은 사례를 국내에서 찾아 분석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것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오랜 고심끝에 독일 포츠담의 우정섬을 사례지로 정했습니다.

사실 일반적으로 식물적용학 강의나 플랜팅디자인 책에서 보여주는 사례는 모두 한 장면을 한 순간에 포착한 것입니다. 대개는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찍어서 보여주지요. 하나의 사례지를 집중적으로 살펴보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 보려 합니다. 아름답고 성공적인 사례뿐 아니라 잘못되고 실패한 사례도 함께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어느 한 순간의 장면만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변화하는 양상을 함께 따라가며 관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까닭에 한 장소를 집중 분석하려는 것입니다. 

우정섬은 여러모로 이 조건을 충족합니다. 

첫째 조성된지 90년 가까이 된 성숙한 정원입니다. 위에서 말한 ‘지속가능한’ 정원의 사례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현재 식물적용학의 최신 경향을 보면 점점 숙근초 위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뉴저먼스타일, 네덜란드의 뉴웨이브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최근에 출판되는 식물디자인 책을 보면 아쉽게도 거의 숙근초만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원의 틀은 역시 나무입니다. 우정섬은 오래된 정원이기 때문에 최신 유행을 따르지 않아 교목, 관목, 초본식물이 어우러져 다양한 공간을 만들고 장면을 연출하는 클래식한 정원입니다. 정통적 식물적용 방식을 관찰하기 좋은 곳입니다. 

둘째로는 우정섬 정원의 개념 그 자체입니다. 우점성 정원은 여러 개의 테마구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테마구간의 “테마”가 바로 식물적용기법입니다. 말하자면 식물적용학을 개발한 장본인들이 스스로 실험하고 테스트했던 장소입니다. 그들의 성공과 실패의 흔적을 분석하고자 합니다.

셋째 현재 정원을 총괄하고 있는 토랄프 괴치 소장이 협업합니다. 그는 우정섬에서 뼈가 굵은 인물입니다. 우정섬에서 정원사 교육을 받았고 드레스덴 대학 조경학과를 졸업한 뒤 2001년 우정섬 식재복원설계를 맡았으며 이후 지금까지 운영관리하고 있습니다. 절기에 따라 그를 여러 차례 인터뷰하여 그의 경험과 노하우와 문제점을 들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정섬에는 소위 말하는 <동아시아 출신 식물>이 많습니다. 회화나무로부터 시작하여 우리에게 친숙한 식물이 많아 사례로 삼기에 적절합니다. 

우정섬에 대한 세부적 정보 보기 https://garden-history-lexicon.com/glossary/potsdam-freundschaftsinsel

식물과 통성명하기

식물적용학을 공부하려면 물론 식물을 알아야겠지요. 많은 초보자들이 겁을 먹는 이유가 식물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식물이 한두가지라면 문제없겠지만 정원에 심을 수 있는 수목만 수천종인데다가 초본류는 이루 다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러나 겁먹을 것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식물적용학 교수들도 그 많은 식물을 다 알지 못합니다. 각자 자신이 선호하고 잘 구사할 수 있는 <식물팔레트>를 모으면 됩니다. 처음에 20종 정도로 시작하세요. 시간이 흐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늘어날 겁니다.

식물이름을 외울 필요도 없습니다. 식물과 친해지면 저절로 알게 됩니다. 학교에서 신학기가 시작되면 낯선 친구들과 만나게 되죠. 이때 새 친구들의 이름을 일부러 외우는 학생은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 친해지면 저절로 알게 되니까요.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 또는 내일 아침 처음 만나는 식물과 한번 통성명해 보세요. 안녕! 우리 처음 만났지?  나는 아무갠데 너는 누구니? 또는 좀더 예의를 갖추어, 안녕하세요. 아무개라고 합니다. 그대는 누구신가요?  뭐 이런 식으로 하면 됩니다. 이렇게 해서 알게 된 식물이름은 여간해서는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기왕이면 이름만 물어보지 말고 성격도 좀 파악해 두면 좋겠죠. 식물원에 가면 식물마다 이름표가 붙어 있으니 익히기 좋을겁니다. 어차피 틈나는대로 식물원에 가는 건 기본입니다.

식물이름만 알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때부터 시작입니다.

감사합니다.

2021년 2월 8일

대표 고 정 희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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