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 날아 온 편지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민 로이스의 글 두 편
며칠 전, 새 해 선물처럼 반가운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이메일이 아니라 진짜 편지봉투에 들어 있는 진짜 편지다. 이메일과 인터넷을 혐오하는 선배님이 보낸 편지. 열어보니 A4 용지 석 장이 들어있었다. 한 장은 선배가 내게 쓴 편지, 두 번째 것은 잡지 페이지 하나를 복사한 것. 마지막 장에는 짧은 글 두 편이 타이핑되어 있었다.
선배의 편지를 읽어 보니 동봉한 두 장의 글에 대한 정체가 밝혀졌다. 복사한 잡지 페이지는 민 로이스가 쓴 짧은 글 두 편이다. 반갑지만 그림의 떡. 네덜란드 어로 되어 있어서 내게는 해독 불가. 그것을 아는 선배가, 네덜란드 어를 잘 하는 선배가 친절하게 독일어로 번역하여 타이핑해서 첨부했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선배의 설명에 따르면 그 잡지 기사는 로제트라는 네덜란드 친구가 보내온 것이라 한다. 그것을 번역해서 고정희에게 보내주면 좋겠다는 당부와 함께.
사연인즉,
민 로이스가 지금 살아있다면 올해 만 118세가 되었을 것이다. 민 생전에 언니 동생하며 지내던 절친이 있었는데 그분이 바로 로제트다. 로제트 잔드포르트. 아직 살아계신다. 민이 출간했던 정원잡지 편집장을 보낸 분이다. 올해 백 세. 운신을 못해 바깥출입을 못하지만 정신은 명경같고 음성은 카랑카랑 힘이 넘친다. 전화선을 통해서는 백 세라는 나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선배가 소개해 줘서 지난 가을 로제트와 통화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처음에 “통화하기 편하신 시간이 언제예요” 라고 여쭈니 하루 23시간이라는 답이 총알같이 돌아왔다. “23시간?”, “매일 한 시간씩 도우미가 다녀가기 때문에 그 시간을 빼야 해서 내 하루는 23시간이야.” 라고 농을 하신다.
그리고 민을 좋아하느냐고 물으신다. 당근입니다. 존경하고요. 이렇게 답했더니 민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 좋다고 하시는데 민이 세상을 떠난 지 이십년이 넘었는데 그에 대한 애정이 절절히 느껴진다. 정말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민? 패션감각이 전무해서 옷은 죄다 내가 디자인해서 입혔어.”
그동안 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민의 깊고 깊은 세계를 후세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 두렵다고 하신다. 민의 세계를 한국에 잘 전달해 달라고 당부하시고 당신께서 또 내게 민의 삶과 작품 세계를 잘 전달해 줄 수 있을지 두렵다고도 하신다. 책임감에 잠을 못 이루신다고 선배가 전해 준다. 그 이야기를 듣고 아연해서 그럼 그만둘까 했더니 그건 또 아니라고 한다. 내 전화를 기다리며 알뜰하게 준비하는 것에 기쁨을 느끼신다고 전해준다. 전화를 하면 숙제하느라 밤잠을 설쳤다고 농을 하신다.
예를 들어 민의 전기가 출판된 것이 있는데 그건 믿을 것이 못되니 읽지 말라고 충고. ㅋㅋ 읽고 싶어도 네덜란드 어에는 까막눈이라. 그런데 로제트가 민의 일기장을 물려 받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이따금 일기장에서 몇 구절 읽어주신다. 민은 여든이 넘어서도 매일 설계를 했는데 예전처럼 설계도가 잘 안 그려지는 것을 무척 속상해 했다고 한다. 한편 자연에 점점 더 몰입했던 것 같다. 사망하기 전엔 삶과 자연의 숭고함에 관하여 많은 메모를 남겼다.
아 참, 로제트 여사는 독일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신다. 독일어를 어찌 그리 잘 하시냐 물었더니 옛날에 학교에서 배웠다고 하신다. 참 대단한 양반이시다. 중학교 때 배운 언어를 백 세가 되어서도 저렇게 술술 구사하다니. 아무리 닮은 언어라 해도.
그건 그렇고 로제트 여사가 발굴하여 내 선배에게 보내고 선배가 정성스럽게 번역하여 보내 준 민의 글 두 편을 소개할까 한다.
첫 번째 글은 숲에 대한 것. 민의 작품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숲속 원형 잔디밭에 관한 짧은 설명. 두 번째 글은 민의 시범정원에 관한 이야기. 둘 다 민 답게 단순명료하다. 다음 포스트에 차례로.
- 민 로이스 Mien Ruys (1904~1999), 네덜란드 조경가. 모더니즘 조경을 유도해내어 네덜란드 조경계에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군림했던 여인. 식물적용학 시즌2 – 인물평전 4번째 이야기에서 다뤘다.
© 3.SPACE BERLIN / 식물적용학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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