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에 그린 원 하나
원과 구는 기하학적 형태 중에서 가장 완벽하다. 영겁동안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 행성들이 어느 날 갑자기 육면체 등으로 변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답은 간단하다. 당장 모두 궤도에서 벗어나 우주를 떠 돌게 될 것이다. 지구라는 행성에서 살고 있는 우리도 그리 될 것이다. 우리는 지구가 구형인 덕분에 우주의 미아가 되지 않고 붙어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원을 하나 그려놓고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 볼 수록 신기하기만 하다.
민 로이스가 숲 속에 만들어 넣은 원형 잔디밭을 본 뒤로부터는 그 매력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숲 속에 완벽한 원을 하나 그려 넣을 생각을? 1987년 경에 설계한 것이니 이때 민은 80대 중반이었다. 그가 80대 중반의 나이에 이해한 것을 내가 어찌 짐작이나 하겠는가. 그냥 그 나이가 될 때까지 기다려 보려 한다.
그러다 로제트가 보내 온 민의 글을 보고 잠시 기대했었다. 혹시 여기서 설명하고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았다. 민답게 담담하게 숲을 조성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만다. 원형의 비밀을 혼자 간직하겠다는 건지 아니면 “뭘 그리 궁금해 해? 거기 원형 말고 뭐가 들어갈 수 있는데?” 그러는 것 같기도 하다.
민 로이스 Mien Ruys (1904~1999)가 평생에 걸쳐 조성한 테스트, 실험정원은 크게 두 구간으로 구분된다. 처음부터 있었던 구 정원과 나중에 확장한 신정원으로 나눌 수 있는데 숲이 이 두 정원을 서로 연결한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숙근초 재배원 한 귀퉁이에서부터 시작해서 야금야금 먹어들어가며 실험정원을 키웠다. 당시엔 재배원 아래 쪽에 백년 쯤 된 숲이 있어 바람을 막아 주었다.
숲 외에 오래 된 잎갈나무 가로수 길이 있어 정원 구간을 서로 연결하는 구실을 했었다. 수명이 그리 길지 않은 나무들이어서 모두 죽어버렸다. 민 로이스 실험 정원에 대한 소문이 돌면서 찾아 오는 방문객들이 점점 늘어나자 정원 확장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마침 큰 나무들이 아쉽기도 했던 차라 그 바람막이 숲을 정원으로 개조하기로 했다. 그때까지 그냥 숲으로 존재하던 곳이었으므로 이제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게 만들어야 했다.
우선 오솔길을 하나 냈다. 그 오솔길이 가다 쉴만한 곳에 커다란 원형 잔디밭을 하나 만들어 넣었다. 민은 내심 그 주변에 그늘식물을 집중적으로 실험하고 싶었다고 한다. 수종이 다양하지 않아 원형 주변의 나무를 일부 솎아내고 (민의 말에 따르면 ‘별 가치없는’ ) 새나무들을 심었다. 이제부터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고 말한 것이 35년 전. 나무들이 자라 제법 깊은 숲이 되었다.
(관련: 식물적용학 시즌2, 인물평전 1부 4강 민 로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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