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근초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민 로이스 본인이 그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재배원에서는 숙근초가 미처 다 자라기 전에 팔려나갔다. 그것을 보며 민은 저 작은 식물들이 자라서 어떤 모습이 될 지 늘 궁금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느 날 아버지에게 가서 “아버지, 나 숙근초 좀 길러보고 싶으니 자리 좀 내 주세요.” 했더라고. 그래서 재배원 구석자리 큰 나무 밑에 그늘 식물을 심으며 시작. 심는 김에 옹달샘도 하나 만들어 넣었는데 이것이 첫 번째 실험 정원이 되었다.

그것이 60년전, 그때는 관리도 내가 직접 했다. 아버지 재배원 직원들에게 어떻게 관리하는 지 배워가면서.

1937년 내가 책임지고 있던 아버지 설계사무실을 암스테르담으로 옮겼다. 그리고 곧 터진 전쟁으로 인해 내 실험 정원은 아무도 돌보지 못하게 되었다. 정원식물들이 좋아할 리 없었다. 나중에 정원을 확장하고 보니 관리인력이 더 필요해 졌다. 고정 정원사가 있어야 했다. 그래서 헹크 베르벡을 고용했다. 그는 마치 자신의 정원인 것처럼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실험정원을 돌보기 시작했다. 나는 설계사무실일이 너무 바빠 실험정원을 돌볼 시간이 모자랐다. 그럭저럭 꾸려나가다가 일이 바빠지면 재배원에 도움을 요청하곤 했는데 그러다보니 관리비용이 점점 커져 감당이 되지 않았다.

어쩐다, 정원 문을 닫아야 하나? 그럴 수는 없었다. 수십 년의 작업을 수포로 돌아가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의논 끝에 실험정원 재단 설립이라는 해법을 찾았다. 재배원의 땅을 상속임대할 수 있게 되었고 여러 지인들이 자본을 모아 재단의 기금을 마련했다.

그래서 “민 로이스 정원 재단”이 탄생했다. 정원을 유지보존하고 필요하면 확장하며 정원의 본질을 영구히 지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험정원의 본질은 테스트와 계몽이다.

민 로이스, “나의 정원”, in: Onze Eigen Tuin, 1987.

이어지는 정원 실험

우정섬과는 달리 민 로이스 정원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이 가능하다. 민 로이스의 설계사무소는 그녀의 사후에도 직원들이 계속 꾸려가고 있다. 지금까지 후계들이 다섯 개의 정원을 추가로 조성했다. 민 로이스의 정신세계를 진정하게 이어받은 것이라 하겠다. 그들은 민 로이스의 설계 개념을 물려받았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모방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색채를 입힌다.

아래 도면은 민이 세상을 떠난 해, 실험정원 75주년 행사를 개최하며 직원들이 설계하여 조성한 정원.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좀 더 상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민 로이스 실험정원 26호. “토피어리와 코너 정원”.

민 로이스 실험정원 사이트 : Home | Gardens Mien Ruys (tuinenmienruys.n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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